사법시험 출제위원을 하며 느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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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 출제위원을 하며 느낀 것 (1)
사법시험 출제위원 제안을 받았던 날과 그때 느꼈던 책임에 대하여.
법과 인간2026년 5월 18일약 2분, 연재: 사법시험 출제위원을 하며 느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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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제위원 제안을 받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여러 직책을 맡아 보았다.
학회 일을 하기도 했고, 정부 자문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받았던 한 통의 연락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사법시험 출제위원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었다.
처음에는 기쁜 마음보다 무거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출제위원이라는 자리는 단순히 문제를 만드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문제는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몇 년 동안 준비한 수험생의 노력, 미래의 진로, 그리고 법조인의 출발점이 그 문제를 통해 평가된다.
그래서 출제위원은 무엇을 묻고 싶은가보다 무엇을 묻지 말아야 하는가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시험이 얼마나 무거운 제도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시험을 개인의 경쟁으로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험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다. 사회가 법조인에게 어떤 능력을 기대하는지, 어떤 사람을 법의 현장으로 보낼 것인지를 드러내는 제도이기도 하다.
제안을 받았던 날, 나는 오래전 수험생이었던 시절을 떠올렸다. 법전과 판례집 사이에서 하루를 보내던 시간, 불안과 기대가 섞여 있던 날들. 그때 나 역시 시험 한 장에 많은 것을 맡겨야 했다. 그 기억이 제안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동료 교수들에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도 했다. 어떤 이는 출제는 학문을 사회에 돌려주는 일이라고 말했고, 어떤 이는 책임이 너무 크니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말 모두 틀리지 않았다. 학문과 사회, 책임과 공정 사이에서 출제위원은 서 있어야 한다.
나는 결국 수락했다.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두려움 자체가 이 일을 맡아야 할 이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게를 알지 못하는 채 문제를 만드는 것보다, 무게를 알고 조심스럽게 고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출제 과정이 시작되면 일상은 달라진다. 보안이 필요하고, 외부와의 연락이 제한되며, 작은 문장 하나에도 오랜 시간을 들이게 된다. 그 과정은 번거롭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험이 얼마나 정교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좋은 시험은 사람을 떨어뜨리는 시험이 아니다. 좋은 시험은 그 사람이 갖추어야 할 능력을 공정하게 확인하는 시험이다. 그리고 그 공정함은 출제위원의 양심에서 시작된다. 완벽한 시험이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양심 없는 시험은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날 이후 나는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법조인의 출발점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출제위원의 역할을 바라보게 되었다. 시험은 종이 위의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가 미래의 법조인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출제위원은 그 질문을 대신 작성하는 사람이다.
아직도 그 제안을 받았던 날의 무게는 가끔 떠오른다. 자랑스러웠던 순간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던 순간이었다. 시험이라는 제도는 오래 남을 것이고, 그 제도를 통해 지나간 사람들의 삶도 오래 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출제와 채점을 떠올릴 때마다 책임이라는 단어부터 생각한다. 법조인의 길은 시험 한 장에서 시작되지만, 그 시작은 결코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