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 출제위원을 하며 느낀 것
연재 페이지: 사법시험 출제위원을 하며 느낀 것
사법시험 출제위원을 하며 느낀 것 (4)
시험이 진정으로 평가해야 하는 능력은 무엇인가.
법철학2026년 5월 28일약 2분, 연재: 사법시험 출제위원을 하며 느낀 것
제4편 / 총 5편연재 전체 보기 →
시험은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가
시험은 늘 논란의 대상이 된다.
너무 어렵다는 말도 있고, 너무 쉽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출제위원의 입장에서 보면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시험은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가.
지식을 평가하는 것은 필요하다. 법조인은 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문과 판례, 기본적인 법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법의 현장에서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법조인은 사람의 문제를 다룬다. 갈등을 이해해야 하고, 사실을 분석해야 하며, 서로 다른 주장 사이에서 판단해야 한다. 형사법의 세계에서는 한 사람의 행위가 국가의 형벌권과 맞닿는다. 그 판단은 단순한 지식의 적용이 아니다.
따라서 시험 역시 사고력을 평가해야 한다. 나는 언제나 시험이 암기력을 겨루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기본 지식은 중요하다. 그러나 법을 이해하는 능력은 암기를 넘어선다.
시험을 설계할 때 나는 종종 법철학적 질문을 떠올린다. 법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판단은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시험 문제에 직접 등장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좋은 문제는 이런 질문을 배경으로 한다.
법조인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빨리 말하는 능력만이 아니다. 문제를 이해하고, 쟁점을 발견하고, 논리를 전개하며,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스스로 밟을 수 있는 능력이다. 시험은 그 과정을 확인하는 장치여야 한다.
한편 시험에는 분명한 한계도 있다. 인격, 윤리, 공감 능력 같은 것들은 답안지로 평가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험을 만드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시험은 법조인의 가능성 일부를 보여줄 수 있을 뿐, 사람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시험은 필요하다. 사회는 법조인을 선발하는 방법을 필요로 하고, 그 선발 과정에는 최소한의 공정함과 예측 가능성이 요구된다. 문제는 시험이 무엇을 평가하는가에 달려 있다.
좋은 법조인은 많이 외운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시험이 그런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시험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제위원으로 일하며 나는 시험을 기술의 문제로만 보지 않게 되었다. 문항의 난이도, 배점, 출제 범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시험이 어떤 법조인을 기대하는가이다.
시험은 종이 위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미래의 법조인에게 요구하는 능력과 태도를 드러내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만드는 일이 출제위원의 책임이라면, 나는 그 책임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