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법 교수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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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 교수로 산다는 것 (1)
논문을 잘 쓰는 사람으로 보였지만, 학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새로운 질문을 계속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학자로서의 기록2026년 5월 30일약 2분, 연재: 형사법 교수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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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 교수로 산다는 것 (1)
학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교수님은 논문을 참 잘 쓰시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나는 운 좋게도 한국에서 처음으로 두 개의 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학자로서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한 번도 논문을 쉽게 쓴 적이 없다.
오히려 상을 받은 이후가 더 힘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연구를 쉽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새로운 논문 주제가 저절로 떠오르고, 원고가 자연스럽게 써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논문 한 편을 쓰기 위해 몇 달 동안 같은 문제를 붙들고 있었던 적이 많았다. 이미 수많은 선행연구가 존재하는 주제에서 내가 무엇을 새롭게 말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논의한 문제에 또 하나의 글을 보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학자의 가장 큰 어려움은 글을 쓰는 기술이 아니다.
새로운 시각을 유지하는 일이다.
형사법이라는 학문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수많은 학자들이 치열하게 논쟁했고, 방대한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그런 학문 속에서 자신만의 질문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오히려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경험이 쌓일수록 익숙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익숙한 이론으로 설명하게 된다. 익숙한 결론에 안주하게 된다.
그러나 논문은 익숙함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논문은 낯선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늘 스스로를 의심하려고 노력했다.
“정말 그럴까?”
“혹시 다른 관점은 없을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들은 논문을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학자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질문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평생 법학자라기보다 창작자에 가까운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소설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야 하고, 화가는 새로운 시선을 찾아야 한다. 학자 역시 다르지 않다. 연구 논문은 법조문을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의 삶은 생각보다 고독하다.
누군가는 완성된 논문만 본다.
누군가는 수상 경력만 기억한다.
그러나 그 뒤에는 수없이 폐기된 메모와, 끝내 논문이 되지 못한 아이디어들과,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해 원고를 접어둔 날들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학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논문을 쓰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내가 평생 학문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학자는 늙는다.
나는 정년퇴임을 했지만, 아직도 새로운 질문을 만나면 마음이 움직인다.
아마 학자란 결국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