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법 교수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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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 교수로 산다는 것 (4)
35년 동안 법을 가르치며 생각하게 된 교육의 의미와 법학교육의 본질에 대한 기록.
법학교육2026년 6월 3일약 2분, 연재: 형사법 교수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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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가르친다는 것
오랫동안 대학에서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가르쳐 왔다.
처음 강단에 섰을 때만 해도 내가 해야 할 일은 학생들에게 법률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과서를 설명하고, 판례를 소개하고, 시험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수의 역할이라고 여겼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나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법은 조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법학은 조문을 외우는 학문이 아니다.
학생들은 종종 묻는다.
"교수님, 이것도 외워야 합니까?"
"이 판례는 시험에 나옵니까?"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그러나 법학의 본질은 암기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왜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가.
어떤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가.
그 상황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
법은 결국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강의실에서 정답을 가르치기보다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었다.
같은 판례를 읽더라도 어떤 학생은 결론만 본다.
반면 어떤 학생은 그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를 살펴본다.
그리고 또 어떤 학생은 그 판결이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한다.
나는 언제나 마지막 학생이 되기를 바랐다.
법률가는 정답을 암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이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강의를 하다 보면 학생들의 표정이 바뀌는 순간이 있다.
처음에는 조문과 판례를 낯설어하던 학생이 어느 날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만약 제가 판사라면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이 판결이 정말 정의로운 결과일까요?"
그 순간을 볼 때마다 교육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법학교육은 학생들에게 정답을 주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질문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에 가깝다.
물론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강의실에는 언제나 시험이 있고, 성적이 있고, 취업에 대한 고민이 있다.
학생들도 바쁘고 교수도 바쁘다.
그래서 때로는 법학이 지닌 본래의 질문을 놓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법학교육이 결국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법률가는 단순히 법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판단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법학교육의 목적이라면, 법을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가르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법을 가르쳤지만, 동시에 학생들로부터도 많은 것을 배웠다.
학생들의 질문은 때때로 나의 연구 주제가 되었고, 학생들의 고민은 내가 법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내게 무엇을 가르쳤느냐고 묻는다면, 형법이나 형사소송법보다 먼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오랫동안 법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법학교육의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